<Today's EPL Player - 세네갈의 보석, 사디오 마네>



“비디오 콘솔 게임은 시간 낭비” - 스페인 언론 '마르카' 인터뷰 중


 대한민국 남자라면, 과거 학창시절 친구들과 삼삼오오 피시방으로 몰려가 즐기던 '피파'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지금도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하며, 게임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감히 누가 '시간낭비'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다. 그 이름은 리버풀의 슈퍼크랙, '사디오 마네'.

 

 축구를 사랑하는 동시에, 피파에 죽고 못 사는 전세계 남자들의 '뼈'를 때린 '사디오 마네', 과연 그는 누구인가? 그가 이런 발언을 하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환경과 생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의 소속팀에서의 활약상도 함께 알아볼 것이다. 리버풀을 이끄는 양쪽 날개 중 하나인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빈곤하고, 열악한 유년시절

▲세네갈은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희망이라고 불릴 정도로, 평화적인 정권이양과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이다.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경험했지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수도 다카르를 중심으로 연 6%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에서는 마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사디오 마네는 1992년 4 월 10일 세네갈 세디우 주에 속해있는 '밤 발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여느 아프리카 국가가 그러하듯, 세네갈에서 축구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이런 축구의 국가적 인기는 그가 낙후된 환경 속에서도 축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마네에게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불릴만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그가 13세 되던 해에 '이스탄불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훗날, 마네는 이때의 강렬했던 기억이 리버풀을 동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조국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축구선수에 대한 그의 열망을 더욱 불타게 했다. 한편, 유년시절의 마네는 이미 세네갈의 수도인 다카르에서 스카우터가 내려올 만큼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2. 제너레이션 풋 아카데미

▲축구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굳건했던 마네였지만, 그는 곧 가족들의 반대와 부딪혔다. 특히, 그의 삼촌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축구를 위해 500마일이나 떨어진 수도, 다카르로 '가출'까지 감행했다. 마네의 어머니는 아들을 행적을 수소문하여 다시 그를 고향으로 데려다 놓았으나, 호나우지뉴 같은 선수가 되고 말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1년 후, 마네는 다카르에 위치한 '제네레이션 풋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한다. 제네레이션 풋 아카데미는 세네갈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아카데미이며, 에마뉴엘 아데바요르, 파피스 시세 등을 배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또한, 이 곳은 프랑스 리그 'FC 메츠'의 독점 파트너로서, 많은 아프리카 유망주들이 훈련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 마네는 '파말랑' 코치에 의해 아카데미에 선발되게 되고, FC 메츠가 지원하는 6년 코스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이 시기 마네는 세네갈의 작은 마을에서 '볼의 마법사'라고 불렸던 만큼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친지의 집에서 함께 살며 고된 훈련을 병행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었으나, 그는 축구에 대한 집념 하나만으로도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3. 성장의 발판, 'FC 메츠'


▲FC 메츠와 독점 파트너 관계인 제너레이션 풋 아카데미에는 가장 뛰어난 기량을 지는 18세 선수에게 FC 메츠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마네는 아카데미에서 단연 눈에 띄는 선수였고, 프랑스로 가는 티켓을 획득하게 된다. 유럽진출은 아프리카에서 축구하는 모든 이들이 꿈꾸는 세계이고, 더욱이 마네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낸 성과였기에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마네는 심각한 부상을 안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2011-12 시즌 19경기에 출장해 단 1골만을 기록했다. 또한, FC 메츠는 그 해 3부리그로 강등까지 당했다. 부상과 향수병으로 고생하던 마네에게, FC 메츠 시절은 짧은 행복과 고통이 공존하는 고된 시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4. 'Turning Point' - 2012 런던 올림픽


'Turning Point', 누구나 인생에 하나쯤은 터닝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가히 2012 런던올림픽은 마네에게 터닝포인트라 할만하다. 당시 FC 메츠에서 마네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 조국 세네갈이 런던올림픽에 출전하게 되면서, 마네는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게 된다. 이 대회에서 마네는 자신의 기량을 전세계를 상대로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중 단연 손꼽히는 명장면은 조별리그 A조 제 2경기에서 개최국인 영국을 상대로 나온 플레이이다. 이 경기에서 마네는, 옵사이드 라인을 완벽히 뚫어내는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지금도 해당 패스는 20살의 어린 선수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의 완벽한 패스였다고 생각한다.


5. 오스트리아로 향하다, 'FC 잘츠부르크'


런던올림픽에서 마네의 활약을 눈여겨보았던 잘츠부르크는, 그해 여름이적시장에서 FC 메츠에 400만유로, 한화로 약 54억원의 이적료를 지급하여 마네를 영입하기에 이른다.  오스트리아리그의 강호인 잘츠부르크는 유럽진출의 관문으로 불릴 만큼 많은 유망주들이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또, 우리에게는 '황희찬' 선수로 익숙한 팀이다.


당시 잘츠부르크의 감독이었던 '슈미트'(레버쿠젠 시절 손흥민 감독)는 그를 왼쪽 윙포워드 자리에 낙점했고, 그 결과 대박이었다. 그는 이 잘츠부르크 소속으로 뛰는 두 시즌 동안, 리그에서 63경기 31골을 기록하며 그들의 기대에 완벽히 부합했다. 잘츠부르크에서의 기록은 마네를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격수로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현재 리버풀의 감독이자, 당시 도르트문트의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롭'도 이 시절부터 마네를 주목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6. EPL에 첫발을 내딛다, 'FC 사우스햄튼'


12/13, 13/14시즌 잘츠부르크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그는, 이제 변방에서 온 보통선수가 아니라, 여러 클럽의 주목을 한번에 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유럽의 여러 강팀과 러시아, 중국리그의 팀까지도 그에게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다. 그러나 마네는 "빅클럽의 벤치보다는 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라고 말하며 EPL의 대표적인 '셀링클럽'인 FC 사우스햄튼으로 향한다. 사우스햄튼은 이적료로 1180만 파운드 (한화 약 204억원)을 지불했다. 그의 몸값이 불과 2시즌 전에 비해 3배 이상 폭등한 것이다.


 ▲이전 소속팀이었던 잘츠부르크는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마네가 이적하길 원했기 때문에 선수와 갈등을 겪었다. 때문에 마네는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여름이적시장의 마지막날 겨우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은 마네가 몇개월 동안 팀의 템포에 적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12월 26일  크리스탈팰리스전부터 3연속 득점하며 본래의 기량을 점차 회복해 나갔다. 또한,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인 '두샨 타디치'와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주전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한다. 14/15 시즌, 마네는 30경기 10골을 기록했다. 시즌 막바지인 37R 아스톤빌라전에서는 경기시작 2분 56초만에 헤트트릭을 달성하면서 'EPL 역대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을 경신하는 진기록을 새우기도 했다.

 


사우스햄튼에서의 두번째 시즌인 15/16 시즌, 마네의 성장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맨유'가 그를 영입하고자 하였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훗날 마네는 "이상한 팀이 나를 원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네는 시즌 중반 4개월 동안 침묵했지만, 리그 31R 리버풀전 홈경기에서 2골을 연달아 터트리며, 팀의 극적인 3 - 2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클롭감독은 당시 이 경기를 보고 마네를 영입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폼을 되찾은 그는 맨시티전에서도 헤트트릭을 터트리는 등 좋은 모습을 이어간다. 어느덧, 그는 2년 연속 리그 10골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되어있었다.


7. 그의 현재이자 미래, '리버풀 FC'


리버풀로 이적한 직후, 기념촬영을 하는 마네

시즌이 종료된 이후, 그는 리버풀과 강력하게 링크되었다. 마리오 괴체 영입에 실패한 리버풀이 마네에게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괴체는 리버풀이 유로파 우승에 실패하자 마음을 접었다고 한다.) 마네는 리버풀은 '이스탄불의 기적'을 이루어낸 우상같은 곳이었기에 거절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결국, 2016년 6월 28일 리버풀로 공식 이적했다. 이적료는 옵션 포함 £34m으로 한화 약 565억 원이다. 이제, 그의 몸값은 도르트문트 시절보다 10배 이상 올랐다.


현재의 리버풀을 만든 남자, 클롭

이 영입은 클롭 감독이 리버풀을 리빌딩하며 처음으로 성사시킨 거물급 영입이었다. 감히, 마네의 영입은 길었던 암흑기를 청산하고자 하는 리버풀의 의지라고 볼 수 있겠다. 클롭 감독은 마네의 합류를 축하하며, "도르트문트 시절 마네를 영입하지 않은 것이 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리버풀 2016/17 시즌 ( 7 . 1 )


항상 10번의 등번호를 고수하던 마네였지만, 리버풀에서는 등번호 19번을 부여받았다. ( 사실 당시 리버풀의 10번은 '쿠티뉴'였다.) 마네는 리버풀에서의 첫 공식경기인 리그 1R 아스날전에서 상대 수비진을 완벽하게 압살하고, 리그 데뷔와 동시에 데뷔골을 신고하였다. 터치라인부터 골대까지 주파하는 산소탱크적 면모와, 현란한 드리블 실력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6/17 시즌 25R 토트넘을 상대로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여주는 마네

해당 시즌 마네는 리그 27경기 13골 5도움을 기록하며 첫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리그 3R와 25R 토트넘전에서는 마치 전성기의 수아레즈를 보는듯한 폭발적인 스피드와 드리블로 팬들을 즐겁게 했다. 특히, 25R 경기에서 기록한 2골 간의 시간차는 불과 2분에 불과했다.


볼을 경합하는 마네와 에버튼의 베인스

그러나, 이윽고 치열하기로 유명한 30R 머지사이드더비에서, 그는 에버튼의 수비수인 베인스와 볼을 다투다가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고 시즌아웃이 확정되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데뷔시즌을 부상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시즌 마네는 본인의 EPL 최다골 기록을 경신하고, PFA 선정 올해의 BEST 11 선수로 선정되는 등 자신의 '커리어하이'라고 볼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리버풀 2017/18 시즌 ( 7 . 2 )


새로운 이적생 살라와 손을 맞잡는 마네

17/18 시즌 리버풀은 세리에특급인 '모하메드 살라'를 영입하며 공격진을 다시 한번 보강한다. 때문에, 좌우를 번갈아 뛰던 마네는 왼쪽 윙어로 정착하게 된다. 리그 개막 후, 지난 시즌처럼 파워풀하고 직선적인 돌파를 통해 3R 연속 득점에 성공한 그는 EPL 사무국 선정 8월의 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부진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슈퍼크랙일 줄 알았던 그에게도 암흑기는 있었다. 리그 16R 에버튼전에 출전한 마네는 시종일관 몸이 무거워 보였다. 사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절호의 역습찬스에서 더 좋은 위치에 있던 살라와 체임벌린을 무시하고 탐욕을 부렸던 것이 문제였다.

 

당시 이적생인 살라가 리그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자신의 부진은 그에게 큰 압박이었을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새롭게 투입되었던 로버트슨의 공격력이 현재와 같지 않았어서, 견제가 그에게 집중되었다는 점, 정도가 그의 플레이를 옹호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럼에도, 부진의 근본적인 원인은 폼저하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포르투전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기뻐하는 마네

▲마네와 로버트슨의 공수변경을 조정하려는 클롭감독의 지시에 부담을 가지고 있던 마네. 그러나, 챔스 16강 포르투 원정에서 리버풀 입단 후 첫 '헤트트릭'을 기록해 팀의 승리를 견인하며 부활했다. 폭발적인 스피드와 발재간이 돋보였던 이전까지의 경기보다는 발군의 연계플레이가 눈에 띄는 경기였다.


* 리버풀 2018/19 시즌 ( 7 . 3 )


 ▲다음 시즌 마네는 쿠티뉴의 이적 이후 공석이었던 등번호 '10번'을 부여받는다. 마네에게 10번은 마네에 의미 있는 번호이기도 하다. 마네는 지난 2013년 레드불 잘츠부르크 시절부터, 2016 사우샘프턴 시절까지 등번호 10번만을 고집했다.


▲리버풀에서 마네의 3번째 시즌은 불안한 전반기와 성실했던 후반기라고 볼 수 있겠다. 전반기에 보여준 모습은 이른바 '기복'이 심했다. (월드컵에서 아프리카팀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신바람'축구랄까;) 리그 초반에는 매경기 뛰어난 활약과 부진을 넘나들었다. (그럼에도, 리그 36경기 22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는 성과는 있었다.) 다만, 후반기에 접어들며 안정적인 연계와 장기인 드리블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리버풀의 11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기여한 바가 크다. 16강 뮌헨과의 2차전에서는 상대수비를 압도하며, 완벽한 칩샷을 선보이기도 했다. 챔스 경기마다 뛰어난 돌파와, 부쩍 성장한 수비능력을 보여주어 팬들을 즐겁게 했다. 또한, 토트넘과의 챔스 결승에서 득점을 없었으나, 전반 시작 1분만에 PK를 유도해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다소 기복이 있는 모습이었지만, 리그에서는 처음으로 20골 고지를 밟으며 살라, 오바메양과 함께 득점왕을 차지하였고, 후반기의 활약에 힘입어 2019 PFA 올해의 팀에 팀 동료 반 다이크, 로버트슨, 알렉산더-아놀드와 함께 들어가기도 했다. 2년 연속 올해의 팀에 선정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18/19 시즌 명성에 걸맞은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 리버풀 2019/20 시즌 ( 7 . 4)


▲어느덧 리버풀에서 4번째 시즌을 보낸 마네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정상급 윙어로 거듭나게 되었다. 리버풀에서의 가장 큰 발전은 연계플레이 능력이 강화된 것이다. 17/18 시즌 살라의 영입 이후, 한때 마네는 프리롤을 부여받아 원활한 볼배급과 빠른 템포의 패스를 주문받았었는데 이를 통해 안정적인 연계능력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포스팅을 하고 있는 바로 지금, EPL의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리버풀은 이번 시즌 리그 32승 3무 3패라는 성적으로 99의 승점을 획득해 '30년만에' 잉글랜드 정상에 올랐다. 89/90 시즌 이후, 오늘날의 역사적인 우승이 있기까지 마네를 필두로 한 '마누라 라인'의 공을 지대했다고 볼 수 있겠다.

 

 ▲마네는 이번 시즌에도 18득점 7도움을 기록했다. 4시즌 연속으로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것은 공격수로서 영광스러운 일이다. 17/18 시즌 엄청난 활약을 보였던 살라에 대한 수비의 견제가 심해진 것이, 마네에게는 오히려 자유롭게 드리블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되어 득점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살라와 피르미누의 득점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마네는 이번 시즌 리버풀의 공격대장이었다.


8. <<결론:  축구선수로서의 마네는 어떤 선수인가?>>


 ▲축구선수로서 마네는 볼컨트롤에 능한데다, 아프리칸 특유의 압도적인 밸런스와 스피드까지 갖춘 이른바 '크랙형' 선수이다. 기록상 그의 최고속도는 34.84km/h에 이르는데, 이는 EPL 최상위권이다. 또한, 밸런스에 기반을 둔 마네 특유의 '정지 - 스프린트' 기술은 상대수비의 타이밍을 빼앗아 그를 상대하기 더욱 어렵게 한다.

 

 ▲뛰어난 드리블 능력 이외에도, 눈에 띄게 발전한 연계능력은 주목할만하다. 빠른 돌파를 통해 슈팅을 할듯하면서도, 엇박 타이밍에 중앙으로 볼을 배급해 주는 모습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더하여, 쿠티뉴의 공백 시 2선 3선에서 볼배급을 담당했던 경험에서 나온 창의적인 스루패스 및 전환성 패스는, 그를 '연계형 공격수'라고 불러도 손색없게 만든다.


9. 그의 삶과  노력, 그리고 '잊지 않음'에 대하여...


 그의 부모님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로 향하는 마네를 만류했던 것이 그의 나이 16세였다. 12년이 지난 후, 28살의 마네는 이제는 더 이상 작은 시골마을에서 축구선수를 꿈꾸는 소년이 아니다. 그는 전세계인이 인정하는 월드클래스 윙어 중 한명이자, 세네갈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키워왔던 고향마을에서의 추억을 잊지는 않았다. 그는 낙후된 고향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으며, 2020년도에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병원이 없어 질병에 죽어가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며 병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고향의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6,000만원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마네는 말한다.

  • "나에게 페라리 10대가 왜 필요한가?"
  • "나는 어린시절 가난했기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 "오늘날 나에게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
  •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옷과 음식을 줄 수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

 

 마네는 주급 15만 파운드를 받고, 몸값이 1억 4,400만 파운드에 이르는 선수이다. 그러나, 그는 경기가 끝나면 모스크를 청소하고,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즐긴다. 그런 그에게 수억짜리 슈퍼카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를 화나게 했던 '비디오 게임'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당신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어느 허름한 지하철역에 걸려있을 듯한 문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급하다는 이유로 소중했던 추억과 공간을 잃어버리고 만다. 마네가 살아온 길을 슬며시 따라가 보니, 문득 오늘도, 내일도 그대로일 것만 같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밀려온다.

 

 '우리는 날들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함께 했던 평범했던 날들보다는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한다는 말이리라. 

 

우리에게 마네는 그런 선수이며, 마네에게 고향을 그런 곳이다. 마네는 그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순간에 충실한가?

 

'바쁨'이라는 일반명사 아래, 소중했던 인연과 사람과 장소를, 그만 놓쳐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식사할 시간도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과거의 추억과 '그리움', '소중함'을 호소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말하고 싶다. Make it count! 순간을 소중히,라고 말이다. 결국 마지막에 남는 기억은 행복했던 추억과 아름다웠던 순간일 것이다. -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감히 말씀드린다.

 

EPL PLAYER 시리즈를 연재하다 보면, 그 선수의 생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이번 포스팅은 리버풀의 천재 크랙이자, 세네갈의 영웅인 '마네'의 발자취를 밟아보며, 축구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 독자 여러분들께도, 선수에 대한 정보뿐만이 아니라, 여러 감상이 교차하는 감명 깊은 포스팅이 되었기를 희망한다. -

 

 글을 쓰는 이 '순간'을 기억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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